배반의 레시피(이윤길)

등록일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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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의 레시피

 

북태평양이 여름철인 탓이다. 시도 때도 없는 저기압이 몰려왔다. 하루를 조업하면 하루는 피항으로 보내야만했다. 바다의 변덕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바쁘게 지나갔다.

칠월 초쯤부터 포클랜드에서 이동한 대만선적 봉수망들이 한 척 두 척 보이기 시작했다. 대만선적의 봉수망은 총톤수 천 톤이 넘는 대형선들이다. 집어등의 촉광으로 보나 스피드로 보나 한국선적 봉수망보다 뛰어났다.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그네들의 어획량으로 어가(魚價)가 폭락한다고 야단이었다.

대만선적 봉수망과 한국과메기시장 원어 공급을 놓고 경쟁하는 한국선적 배들이다. 한국선적의 봉수망들은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에게 덮칠 불행의 그림자는 커다랗게 자라만가고 있었다.

“발전기 소리가 이상하던데, 이상은 없는 겁니까?”

나는 저녁식사 시간에 기관장에게 물었다.

“이호 발전기 사우드 상태가 아주 안 좋아졌습니다.”

출항준비작업 때부터 이호 발전기 사우드의 클리어런스가 많았다고 보고하는 기관장 얼굴에서 피곤함이 묻어났다.

“큰일인데.”

“배도 사람도 늙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일단은 어획량이 많지 않으니 일호기를 중점으로 해서 운전해 보겠습니다.”

기관장은 그렇게라도 나를 안심 시키려는 눈치가 역역했다.

“헌팅도 심한 것 같고.”

앞으로 어황이 좋아지면 냉동기에 풀 부하를 걸어야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이호 발전기도 돌려야한다.

“문제가 있긴 있는데. 한국까지 가서 수리 한다는 것도 힘들겠고 어떻게든 이번 어기 끝나도록 신경을 써야합니다.”

내가 기관장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아무런 탈이 없어야 하는데…….”

같이 식사하던 통신장이 거들었다. 때마침 조선족실습항해사가 커피를 가져왔다.

“커피나 한 잔 합시다……. 꽁치로 난장이나 치면 좋겠네.”

나는 커피를 훌쩍거리며 말했다.

불안이 봄날 황사처럼 몰려오는 날들이 지나갔다. 내가 타고 있는 오션 호는 선령이 서른 하고도 일곱 살이나 더 먹었다. 한창 한국의 수산업이 해외로 뻗어나갈 무렵인 칠십 년대 정부의 주도아래 계획건조 된 배였다. 당시 한국의 제강산업은 눈부신 발전을 하고는 있었지만 특수강의 제련기술은 완벽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때에 건조한 배들도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이호 발전기뿐만 아니라 선체를 구성하고 있는 철판의 이곳저곳이 부식으로 인해 파공이 뚫리고 있다.

지난밤도 그랬다.

“선장님 큰일 났습니다.”

갑판장은 과묵한 사람이었다. 젊어서 한 때 대구에서 조폭의 행동대원을 하기도 했으나 어느 날부터인가 회의가 들더라고 했다. 그 길로 원양어선을 타기 시작했다. 인도양 참치주낙선의 갑판원 시작해 대서양 라스팔마스의 트롤, 남빙양의 파타고니아 이빨고기주낙선, 베링 해의 명태 트롤을 거처 봉수망에 승선해 나와 인연이 닿은 사람이다. 조폭의 행동대원 출신답게 근력과 체력이 뛰어난 그는 나름대로의 포스를 지닌 갑판장이다. 그런 사람이 큰일이라니. 나는 가슴부터 덜컥거렸다. 황천으로 인해 시앙카를 던져 놓고 하루를 보냈다. 기상이 회복되어 막 시앙카를 수납했다. 시앙카 수납작업을 마친 갑판장이 헐레벌떡 브리지로 뛰어든 것이다.

“무슨 일이요, 갑판장.”

“선수창고에 물이 가득 찼습니다.”

“선수창고?”

나는 배를 타고 다녔지만 물이란 소리만 들으면 질겁했다. 선장 이 년 차였을 때다. 기관실의 누수로 인해 내가 타고 있던 세양 호의 침몰을 경험한 탓이기도 했다. ……………(하략)…………………

 

□ 이윤길, ≪계간문예≫ 영목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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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록 문예지 : <해양과 문학> 15,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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