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배 부활의 배(김종찬)

등록일2020-06-24

조회수101

 

운명의 배 부활의 배

(천국 통신)

 

프롤로그

 

󰡔선원 33명 탄 北大西洋 遠洋漁船 遭難󰡕

「부산 중구 동광동 2가 <가나안 수산> 소속 시몬 호가 11월 16일 오후 북대서양 뉴펀들랜드 해역에서 어로작업 도중 높은 파도로 조난됐다. 이 배는 지난 9월 19일 부산항을 출발, 11월 7일 라스팔마스 기지에 들러 중간 보급을 받고 11월 14일 어장에 도착했다. 조업을 시작한 지 이틀 만에 사고를 당한 것이다. 이 배의 선원 33명은 모두 한국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라스팔마스 기지로부터 이 배의 조난 사고 소식은 들었지만 아직까지 침몰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11월 17일 B 일보

 

󰡔선원 가족들 밤새우며 生還 祈禱」

「11월 16일 오후 뉴펀들랜드 해역에서 조난된 시몬 호 선원 가족들은 17일 중구 동광동 2가 <가나안 수산>에 몰려와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땅을 치며 오열했다. N 수고 재학 중 실습항해사로 시몬 호에 승선했다가 실종된 금규석 군(18)의 누나 송희 씨는 “계약 기간이 2년이라 너무 길어서 나가기 싫다는 것을 내가 억지로 권유해 승선시켰다가 이런 변을 당했다”며 가슴을 치고 통곡했다. 기관원 윤태식 씨의 아내 정득순 씨는 “두 달이나 걸리는 머나먼 어장까지 찾아가서 도착하자마자 침몰이라니, 돈 벌러 간 게 아니고 죽으러 갔단 말인가?” 하며 까무러치고 말았다.」

―11월 18일 B 일보

 

󰡔惡天候 무릅쓰고 操業 강행󰡕

「지난 16일 발생한 시몬 호의 참변은 선장의 조업 미숙과 악천후를 무릅쓰고 무리하게 어로작업을 감행했던 점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사고 당시 조난 소식을 듣고 구조작업에 나섰던 파이어니어 호 정민우 선장의 증언에 의하면, 시몬 호가 어장에 도착했을 때 이 해역에는 980hpa의 저기압의 영향으로 초속 25m~30m의 강풍과 7m의 파고가 이는 등 기상상태가 극도로 나빴다고 한다. 그런데도 32세의 젊은 선장은 사고 당일까지 피항하지 않고 선원들의 손발을 맞춰 본다며 시험 조업을 강행했다. 어로전문가들은, 선미에 무거운 그물이 끌고 있는 부자유한 상태에서 강한 파도의 충격을 선체가 흡수하지 못해 침몰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 선원들은 회사 측과 2년간 장기 계약을 맺고 급여 지금 방법이 월급제가 아니고 어획고에 따른 보합제(짓가림제)여서 무리한 조업을 강행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11월 19일 B 일보

 

1.

나는 죽지 않았다.

침몰하는 배 안에 갇혀서 산 채로 수장되었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나는 지금 하늘나라 3층천(三層天) 가운데 제일 아래층인 제1천국에 살고 있다. 나는 여기서 창 밖 풍경을 바라보듯 누나의 일상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다. 누나를 바라볼 수는 있지만 위로할 수는 없다. 천국과 지상은 차원이 다르고 모든 빛과 소리의 파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누나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이 세상을 떠나던 날을 잊지 못하고 있다. 해마다 그날이 다가오면 고등학교 교복 차림의 내 사진을 들여다보며 슬픔을 되씹는다.

-규석이가 살아 있다면 남부럽지 않은 선장이 되어 고기를 한 배 가득 잡아 올 텐데…….

누나는 자갈치 시장바닥에서 날이면 날마다 생선 비린내와 바닷바람에 찌들어 벌써 할머니 티가 난다. 나는 열여덟 살 적 모습 그대로인데.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거짓말이라고 하겠지만 내 영혼은 지금 천국에 살고 있다. 지상에 머물렀던 18년 동안 나는 하나님을 몰랐고 천국도 믿지 않았다. 천국은 예수쟁이들의 마음속에나 있는 소망의 나라인 줄만 알았다. 그랬던 내가 지금 천국에 살고 있다.

땅 속에 살던 굼벵이가 때가 되면 허물을 벗고 매미가 되듯이 유체를 벗어난 내 영혼도 거듭났다. 밤바다에 번쩍이는 달빛 같은 부활의 옷을 입고서.

천국은 별나라 달나라처럼 지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천국은 영의 세계이다. 천국 시민들은 사망이 없는 영원한 존재이며 지상에서처럼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생각의 속도로 이동하며 마음이 머무르는 곳에 영혼이 존재한다.

 

운명의 그날, 바다는 온통 허연 물거품으로 뒤끓고 있었다. 파도는 단숨에 선체를 삼킬 듯이 미쳐 날뛰며 기승을 부렸다. ……………(하략)…………………

 

□ 김종찬, 1988년 부산MBC신인문예상 소설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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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록 문예지 : <해양과 문학> 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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