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고 있다(조천복)

등록일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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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고 있다

 

1

군도의 해역에 들어서자마자 짧은 빛과 긴 빛의 조합으로 된 광선포가 우리 배를 향해 깝죽거리기 시작했다. 그건 모스부호의 영어 A자로 우리 배를 호출하는 발광신호였다. 우리는 단장단광의 빛문자 R자로 양지했다는 응답 신호를 보내며 초단파(VHF) 16채널의 무선 전화로 나와 달라고 요구했다. 곧이어 풀 먹인 후 다림질 하지 않은 삼베 같이 뻣뻣한 목소리의 영어 목소리로 선명과 국적, 행선지와 출항지 및 선적화물을 물어왔다. 필리핀 경비정이었다. 그 후 몇 십분도 지나지 않아 뒤이어 나타난 중국 경비정의 반복된 질문에도 우리는 똑 같이 응답해야만 했다.

사실 사람들은 이 해역을 실효지배국인 중국 이름을 따 산다 군도라 했지만 영어로는 스프래틀리(Spratlys) 군도, 베트남어로는 쯔엉사 군도라고도 불렀다. 하여 각각의 다른 이름처럼 이곳은 중국과 타이완뿐 아니라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과 브루나이 등 관계 6개국이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는 첨예한 분쟁 해역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나는 이곳을 내 친구 수혁의 바다로만 인정하고 있다. 사실 말이지만 어선과 상선을 거치며 세계의 바다를 횡행하는 해기사답지 않게 그는 유달리 자기만의 바다를 가지고 싶어 했었다. 그런데도 작년 이맘때쯤, 그는 고래를 치었다고 실토한 후 새까만 색깔의, 무척이나 큰 작업화를 선미의 불워크에 벗어 놓은 채 감쪽같이 사라졌으니까. 나는 오늘도 그를 회상하며, 어쩌면 이 바다를 그의 영원한 안식처로 여기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가 실종된 날의 숫자에 맞춰 장미꽃 여덟 송이를 밤바다로 향해 던지며 자꾸만 스멀거리는 궁둥이를 선현의 철판에 비벼대기 시작했다. 매 항차 이 해역만 오면 역치가 되어 항문이 간지러워지는 현상 때문이다.

“친구여! 반갑구나.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이 바다와 함께…….”

 

2

작년 늦은 봄 부산을 출항할 때였다.

“새로 온 초사가 식사에 늦네.”

선장은 식당을 둘러보며 신임 초사(1항사)를 기다리며 말했다. 신임 초사(Chief Officer)라면 당연히 인수인계시 살롱사관들에게 부임인사를 하는 법인데도 아직 이었다.

누가 식당으로 고개를 숙이며 성큼 들어섰다. 무척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먼저 눈인사를 보내고는 앉을 좌석을 찾았다. 나는 내 옆 자리를 살짝 두드려 보였다.

“여러분 잘 부탁합니다. 장수혁입니다.”

그는 꾸벅하며 허리를 한 번 굽히고는 자기 자리에 앉았다.

까칠한 수염에 까만 피부, 선량하게 생긴 큰 눈을 두리번거리는 그는 영락없는 수혁이었다. 나는 입안에 가득 찬 국물을 혀에서 몇 번 돌려 삼킨다는 작동기능을 순간 멈춰버렸다. 뜨거운 국물이 걸리지도 않은 채 넘어갔다. 식도는 얼얼했고 목구멍은 따가웠다. 범벅된 통증을 참으며 갑자기 기침을 해대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가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한호야! 오랜만이다.”

“두 분이 친구였어요?”

살롱사관들은 ‘어떻게 이런 우연이?’ 하는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그와 나는 거제도의 J포 해변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졸업한 동갑내기 친구였다. 우리는 겨우 두 집 건너 떨어진 이웃의 가난한 어촌의 청년들이라 빨리 자립하기를 원했었다. 그는 국비의 혜택이 있는 수산계 고등학교를 나와 원양어선의 항해사에서 선장이 되었고, 나는 공고의 통신과를 나와 상선의 통신장이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원양어선과 상선의 해기사가 한 배에 탄다는 건 일종의 사건(?)과 같아 참으로 드문 일이었다. 그건 어쩌면 공전하는 다른 혹성이 겹쳐지는 일식과 월식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애초에는 전임 1항사의 후임으로 우리 배의 2항사가 승진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무슨 연유가 있었으리라. 선장의 말로는 그는 병가로 결원이 생긴 대미항로의 1항사로 진급되어 급히 하선했다고 하니 말이다. ……………(하략)…………………

 

□ 조천복, 2012년 한국해양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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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록 문예지 : <해양과 문학> 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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