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심장 속으로(장세진)

등록일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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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심장 속으로

 

나는 풍산 9호의 브리치 우현 의자에 앉아 아리고 들쑤시는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 하지만 그놈의 통증은 난데없이 옆구리에서 신경을 타고 온몸으로 번져 지독한 아픔을 뇌로 보냈다. 간과 허파, 목덜미와 머리, 심지어 도합 열 개의 발가락까지 아픔으로 잘게 떨렸다. 당연히 브리치를 무난하게 걸어다니며 조업하는 일이 적이 불편하여 나는 의자에 앉은 채 그저 갑판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극도의 모욕감과 아픔이 한데 어우러져 맥 없는 한숨으로 흘러나왔다.

여하튼 갑판은 한마디로 찢겨진 내 허파인 듯, 어지럽게 헝클어진 내 신경인 듯 몹시 지저분했다. 그물의 뼈대에 둘둘 말려 너덜거리는 밑판그물과 날개그물, 찢어져 넝마처럼 너저분한 옆면그물과 윗면그물, 그리고 날카로운 바위 세 개가 그물코들을 뚫고 나와 있는 끝자루그물이 고스란히 내 두 눈에 투영되었다. 바늘대를 들고 지겹도록 나태한 몸짓으로 그물을 꿰매는 선원, 어군들의 내장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냉동팬, 아직 살아 꿈틀거리는 돔과 문어 몇 마리, 이미 죽어 갑판에 드러누워 있는 갑오징어와 오징어, 선원들 사이로 기민하게 돌아다니며 그물코에 엉켜 있는 물고기들의 살점을 뜯어먹고 있는 쥐들도 내 눈의 실핏줄을 당기게 했다.

“저 황금어장을, 아니 저 황금어장의 암초들을, 아니 저놈의 바다를 어떻게 잡아죽일까. 회를 쳐 먹어 버릴까. 아니면 칼로 갈가리 난도질 해 버릴까.”

나는 저 황금어장이, 암초들이, 어군들의 바다가 근원적으로 자아내는 분노로 큭 안간힘을 물었다. 그런데 그것들은 놀랍게도 내 옆구리의 통증까지 더 부추겼다. 또한 옆구리의 신경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내 몸의 구조물을 역시 통증으로 쑤셨다. 그 통증이 얼마나 지독한지 그것들이 내 몸뚱어리를 송두리째 갈아엎는 것 같아 나는 내 몸의 구조물들의 안전여부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나는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어보고, 도합 스무개의 손가락과 발가락도 부지런히 꼼지락거려 보았다. 다행히 내 몸의 그것들은 안전하게 작동하고 있어 나는 괜히 즐거워 느긋한 한숨까지 내쉬었다. 하지만 나는 저 황금어장을, 황금어장의 암초들을 죽여야한다는 강박관념의 늪에 빠진 것 같아 꼭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이지 저 황금어장과 황금어장의 암초들을 브리치에 올려놓고 상스러운 욕지거리를 내쏘며 지끈지끈 밟아버릴까.

그러니까 어젯밤 열 시쯤이었다. 근 2주째 어획고다운 어획고 제대로 한번 올리지 못했겠다. 작업선들 조업하는 어장에 어군들 형성되어 있고, 어군들 형성되어 있는 어장에 작업선들 있다는 어장의 일반적인 원칙을 무시하더라도 주위에는 작업선 한 척 보이지 않았다. 어황정보의 꼬투리라도 잡을 수 있는 해도실의 무선통신기도 며칠 째 찌글거리는 잡음만 쏟아내고 있었다. 어디서 황금의 떼고기를 잡고 있는지 타선의 선장들을 열심히 불러도 마찬가지였다.

하긴 부모형제가 물어봐도 황금의 어황정보를 쉽게 발설하지 않는 선장들이지만 그래도 선장들과 교신하면 어황정보의 조각이라도 얻을 수 있었다. 하여간 몇 번이고 투망하여 서너 시간씩 그물을 끌었지만 고작 문어와 돔, 갑오징어와 잡어 따위가 수물팬 정도 입망되었다. 400톤의 저층트롤 어선, 적어도 이만한 톤수의 어선이라면 한번 서너 시간 예망에 100팬 정도는 입망되어야 선장의 모가지가 붙어 있을 수 있었다. 속된 말로 풍산수산 논 팔아 장사하는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어장의 물때가 좋지 않은 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 근 2주째 죽을 쑤고 있으니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달리 방도가 없었다. 나는 노심초사하는 심정으로 해도실의 어장도에 코를 박고 소말리아 어장에서 어떤 선장도 그물을 끌고 들어가지 않는 죽음의 암초밭, ‘촛대’암초밭을 들여다 보았다. 위도와 경도를 기준으로 어장을 축소시켜 놓은 어장도, 각각의 방위로 어지러이 작도되어 있는 어획코스, 다양한 이름의 암초밭에서 ‘촛대’암초밭은 벌써 가슴 섬찟한 귀기마저 뿌려대고 있었다. 삼년 전에 풍산 7호가 ‘촛대’암초밭 중심에서 예망하다가 침몰한 지점을 표시한 붉은 별 모양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나는 삼 년 전 풍산 7호의 위규태 선장처럼 ‘촛대’암초밭 중심, 암초들이 교묘한 죽음의 덫을 안배해 놓은 그곳에서 그물을 끄는 어리석은 짓 따위는 할 수 없었다. 그때 풍산 7호의 다섯 명의 선원이 실종되고, 위규태 선장마저 선장자리에서 쫓겨나 현재도 부산 자갈치 바닥에서 날마다 술에 절어 살고 있는 엄연한 사실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나는 ‘촛대’암초밭 부근에서 그물을 끌 작정을 하고 풍산 9호를 그곳으로 몰고가서 어군탐지기부터 먼저 들여다보았다.

뭐가 어떻든 나는 내 몸뚱어리, 그리고 내 바다의 삶을 모조리 황금어장에 맡겨두고 있는 뱃놈선장이었다. 벌써 황금어장의 유혹에 꼼짝없이 사로잡힌 내 입은 절로 군침을 담았다. 내 전신의 혈관도 금빛 찬연한 황금어장의 핏물로 싱싱하게 휘돌았다. 더구나 이곳은 소말리아 어장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황금어장이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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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한국소설≫ 신인상 수상.

 

* 작품 수록 문예지 : <해양과 문학> 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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