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판 위의 사람들(옥태권)

등록일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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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랑의 유람선

 

서양에 크리스마스가 있고, 한국에 설이 있다면 배 위에서는 ‘적도제’란 게 있다. 적도를 통과할 때, 바다를 관장하는 신에게 드리는 일종의 의식인 셈인데, 그 신이 포세이돈인지 용왕인지는 잘 모르지만 지금에 와서 그것이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다. 뱃사람들에게 있어 적도제란, 그냥 넘어가기엔 찜찜하고 그렇다고 조상들에게 치성을 드리는 수준으로 목욕재계하기에도 뭣한 일종의 관습처럼 남아있는 행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뱃사람들이 적도제를 기다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명절에 준하는 특식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배 위에서의 식사란 일반 가정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어지간한 수입으로 그렇게 먹다간 살림이 거덜 날 정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괜찮은 건 사실이지만, 소위 적도제 때 등장하는 특식이란 조리장이 온갖 솜씨를 발휘한 요리들이 총 출동하기 때문이다.

독실한 불교신자이던 전임 선장이 있을 때만해도 모두들 돼지머리를 놓고 절을 올리는 등 나름의 격식을 갖추었지만, 기독교 신자인 김선장이 Y호로 부임한 이래 적도제는 특식 나오는 날로 그 의미가 굳어져 가고 있던 즈음이었다.

선장과 같이 승선한 신임 조리장이 이번 적도제의 메인 메뉴로 내놓은 건 통돼지 바베큐였다. 근 열 시간 가까이 돌려서 기름이 쫙 빠진 통돼지 바베큐를 안주로, 모두들 거나하게 취기가 올라있을 무렵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로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누군가의 입에서 ‘하필이면 배가 왜 여성 명사인가’라는 꽤 고답적인 질문이 나왔던 거였다. 불어를 꽤 한다고 알려진 1등 항해사의 학구적인 설명과, 의무승선기간을 마치면 미국에 유학을 가기 위해 토플을 끼고 사는 2등 기관사의 어원적 해설에 이어 갖가지 지식과 구구한 억측들이 난무했지만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에는 어딘가 부족했다. 소동을 일순간에 제압한 기가막힌 대답이 나왔는데, 헷도(헤드 쿼트 마스터-수석 갑판수) 영감이 그 주인공이었다. 승선경력만 자그마치 30년이 넘었다는 영감이 걸쭉한 목소리로, 아따 가방 끈 긴 양반들이 많응게, 말씀들이 겁나게 기러부러요. 그거는 아니지라. 뭐시냐, 거시기 남자들이 타는 것이 여자들 배 아닌게라. 그랑게 무신명사인지에 여자를 탁 갖다 붙여 부럿것제. 모두들 박장대소하며 뒤로 넘어졌지만 어떻게 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스물네 명이 승선하는 Y호 또한 승무원 모두가 당연히 남자였다. 승무원 24명 모두가 남자이고 보면 극히 당연한 말일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모든 상선이 전부 남자들만 근무하는 건 결코 아니다. 실제로 Y호 승무원들이 호주에 정박했을 때 소련 선박에 승선해 있는 승무원인지 가족인지 구분이 모호한 다수의 여성들을 만난 적도 있는데다, Y호의 경우만 해도 노르웨이 선원들이 근무했을 때 여자승무원과 가족이 함께 승선했었다는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던 것이다.

처음 Y호에 승선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놀란 것은, 탁구장과 풀장은 물론 농구장, 그리고 사관과 부원으로 나누어진 휴게실과 독서실에다 홈바까지 갖춰진 시설 때문이었고, 더 놀란 것은 보통선원들의 침실 중에 전신거울과 화장대가 붙은 침실이 여러 개 있다는 사실이었다. 웃기는 것은 모든 승무원들의 방과는 달리 여자승무원들이-아예 방의 명패도 스튜어디스A, B 식으로 새겨져 있다.- 기거했던 방만 이중문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걸 본 사람들마다 ‘조선놈이나 양놈이나 남자들 여자 밝히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라고 입들을 대곤 했지만, 자연의 섭리에 외산과 토종의 구분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한 조물주의 섭리에 위배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선박에서의 삶이며 선원들의 생활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었던 것은 3등 항해사였다. 학창시절 멜빌의 󰡔모비딕󰡕이란 소설을 탐독하고 난 후 에이허브 같은 불굴의 의지를 지닌 선장이 되겠다고 결심한 낭만적인 3항사 최서해는, 배 타는 최고의 대학이라고 해양대학을 덜컥 지원했는데 고래잡는 배의 운항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대학 입학하고 무려 한 학기가 지나서야 알았더란다. 그래, 고래 구경은 하긴 했느냐는 주변의 질문에, ‘웬걸요, 고래를 잡기는커녕 되려 고래만 잡혔슴다. 핫핫.’ 말인즉슨 해양대학 다닐 때 아침구보 며칠 빠져보겠다고 학교 의무실에 근무하던 돌팔이 의사한테 고래만 잡혔다는 얘기였다.

한 권의 소설을 읽고 그것으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 우리들의 낭만파 최서해의 불만은, 이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한 승선생활을 뭔가 의미있고 보람된 삶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교육을 해양대학에서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대학입시를 코 앞에 둘 때까지 한 달에 최소한 서너 권의 책을 읽고 소극장이나 갤러리를 기웃거리던 그였지만, 해양대학 시절에 그가 한 일이라곤 토요일마다 남포동 일대의 술집을 전전하며 빡빡한 학교생활의 스트레스를 푼 것밖에 도무지 한 일이 없었던 탓이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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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태권,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 작품 수록 문예지 : <해양과 문학> 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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