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 일몰(이충호)

등록일2020-06-24

조회수77

 

그날 그 일몰

 

지금 바다는 너무 어둡다.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칠흑 같은 바다에 홀로 떠서 나는 어디론가 흘러간다. 이승인지 저승인지 알 수 없는 바다의 어둠 속에서 하늘을 본다. 별은 나의 운명만큼이나 멀리서 명멸한다.

나는 조선국 통신사 이종실. 이 나라 성군이신 선왕의 명을 받아 바다에 몸을 바친 지 어언 수십 년이 되었건만 지금 나는 이 나라에 불충한 몸이 되어 정처 없이 밤바다를 흘러가고 있다. 일본으로 가는 사행 길에 풍랑으로 배가 전복되어 석 자 반의 작은 널빤지에 몸을 의지한 채 표류한 지도 하루의 낮과 밤이 되었다. 이 밤이 새기까지 내가 살아있을지는 알 수 없다.

돌아보면 지나온 길이 아득하다만 이 나라의 바다를 지키는 수군절도사로서, 왜구의 무리를 토벌하기 위해 수차례에 걸친 대마도 원정과 또 통신사의 일원으로서, 수없이 바닷길을 오가면서 이 나라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서 내 몸을 받쳐왔던 세월이 별빛만큼이나 멀리서 보인다. 지금 나는 한낱 나뭇잎 같은 몸이 되어 정처 없이 밤바다를 흘러가고 있다.

밤바다의 바람은 매섭고 차갑다. 파도는 길길이 날뛰는 칼과 같다. 파도와 바람의 칼이 시시각각으로 뼈를 깎는 이 차가운 밤바다에서 나는 삶과 죽음의 두 길을 동시에 가고 있다.

눈 감으면 이승이고 눈 뜨면 저승인 이 물 위에서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어둠과 한기뿐이었다. 절망과도 같은 캄캄한 밤바다의 한기와 싸우다보니 이제 몸은 지쳤고 정신마저 혼미하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물은 물을 삼키고 내 몸 속에서 우는 저 아득한 외로움과 절망감이 공포와 함께 나를 누른다.

그것은 차라리 아비규환이었다. 너무나 갑자기 불어 닥친 바람이라 어떻게 대비할 수가 없었다. 마치 바다를 뒤흔들어 놓듯 거대한 파도가 여기저기서 일어서더니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우리를 덮쳤다. 두세 번 파도가 우리를 덮칠 때까지는 우리는 파도의 순리에 맞추어 항진하기를 계속했다. 자연의 힘에 대한 대응은 그 힘의 순리에 따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다의 흔들림에 순응하면서 항진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갈수록 바람은 세어지고 파도가 거칠어졌다. 강풍에 돛대가 부러지고 뱃전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큰 물기둥이 우리 배를 덮치면서 갑판에 물이 차고 배는 옆으로 기울어 침몰하고 말았다. 아비규환 속에 누구 하나 서로의 손도 잡지 못하고 그렇게 뿔뿔이 헤어졌다. 많은 사람들은 바다 속으로 흘러가고 나는 앞에 밀려온 목판 하나를 겨우 잡고 하루의 낮과 밤을 견뎌왔다.

 

이번 사행은 일본국의 간청도 있었지만 성상의 숙고와 배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저들 사신들의 청을 성상께선 선뜩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제 관계에 있어서 여러 가지 이해의 득실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대신들의 주청도 있었다. 이에 성상께선 이번 사행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성상께서 첨지중추원사 송처검과 행호군인 나 이종실을 친히 불러 정사와 부사로 각각 임명하고, 종부시 주부 이근을 서장관으로 삼아 일본국에 다녀오도록 명하였다. 이에 사행에 참여할 인원의 선정과 편성이 조심스럽게 이루어졌고 예조참판은 일본국에 사행을 승낙하는 서한을 보냈다.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성상을 알현하였다. 성상께선 삼정승 이하 조정의 문무백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계를 내리고 득의만면한 미소를 띄며 삼사의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덕담으로 사행의 성공을 주문했다. 성상께선 덧붙여 일본이 간청한 물품을 저들에게 내리고 명주 삼백 필과 백금 오백 양을 가지고 가서 나라에 없는 물건을 구해오도록 하명하였다. 성상이 내린 서계(書契)엔 이번 사행의 뜻이 담겨 있었다. 임금의 서계는 국왕으로서의 체통과 당당함이, 그리고 이웃 국가에 대한 배려와 예절이 배어 있는 글이었다. ……………(하략)…………………

 

□ 이충호, ≪월간문학≫ 소설 당선

___________________________

작품 수록 문예지 : <해양과 문학> 8호

 

g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