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장의 바다(천금성)

등록일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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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선장의 바다

 

1.

이윤호 선장은 바로 지금이야말로 집어등(集魚燈)을 켤 때라고 판단했다. 소나 모니터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2차 대전 동안 소나는 그 탁월한 수중물체의 포착력으로 적 잠수함을 추적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나, 이제는 그 용도를 달리하여 어군탐지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모니터는 마치 밤하늘을 투영하는 것 같았다. 1등성도 있었고, 3등성도 있었다. 그 별들이 모두 무리를 지은 물고기 떼임을 오랜 경험이 말해 주고 있었다.

모든 정황도 그의 편이었다. 모처럼 평온을 되찾은 날씨에 더없이 적절한 바닷물 온도. 게다가 달도 뜨지 않은 그믐밤이었다. 휘영청 보름달이 밤바다를 짓궂게 하고 있다면 투망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 한다. 어기(漁期)도 아귀가 딱 들어맞았다. 그러니까 일본열도 중허리를 거슬러 온 장대한 쿠로시오 난류와 알류샨열도로부터 남하해 온 한류가 부딪히는 초여름의 북태평양이다. 바로 이 시기가 연중 최고의 성어기(盛漁期)임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더 이상 무얼 바랄 것인가.

즉시 1항사에게 기관을 끄도록 지시한 다음, 이 선장은 곧장 옥탑방으로 올라갔다. 조타실 지붕을 뚫고 덧지은 지휘실이다. 그곳에도 소나 모니터를 비롯한 통신기 등이 빼곡이 들어차 있고, 무엇보다도 꽁치잡이 배에서는 보병부대의 소총처럼 요긴한 집어등 스위치 패널이 한쪽 벽면에 부착돼 있다. 이제 이 순간부터 그는 양망이 끝날 때까지 결단코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패널의 스위치를 차례차례 젖혀 올렸다. 패널에는 스위치를 따라 1번에서 36번까지 순서대로 고유의 번호가 붙어 있다. 번호의 배열 형상이 주갑판의 평면도와 일치한다. 그리고 선미 중앙을 가리키는 곳에는 유일하게 빨간색으로 표시된 스위치가 있다. 바로 이 빨간 스위치야말로 집어 과정에서 대단원의 매듭을 짓는 요술 방망이가 된다. 칠흑의 밤바다에 불빛을 내비치면 주광성(走光性)의 물고기는 더 없는 놀이터로 여기고 꼬여든다. 그 중에서도 빨간 불빛은 물고기를 더욱 미치게 만든다.

집어등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각각 다섯 개씩의 전등을 매단 불대[燈棒]가 마치 쾌속(快速) 하나로 중세기 적 지중해 일대를 석권한 갤리선의 노(櫓)처럼 좌우 양현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 하나하나의 전력이 850W(와트)나 되는 고촉광(高燭光) 전등이다. 웬만한 시골 마을을 죄다 밝히고도 남을 엄청난 전력량이다. 그 전등을 모두 켜면 북태평양 밤바다가 한순간에 대낮으로 바뀐다. 그 휘황한 불빛을 보고 꽁치 떼가 몰려든다. 스위치를 젖히는 경쾌하면서도 맑은 금속성 음향이 그의 귓바퀴를 때리고 있었다.

이럴 때는 파도가 심술을 부려서도 안 된다. 상어나 돌고래 등의 천적이 얼씬거려서도 안 된다. 주광성의 물고기는 밝은 빛을 선호하는 대신 귀청을 찢는 소음이라면 질색이다. 그래서 선실 어부들조차 숨을 죽인 채 송장처럼 웅크리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점등을 끝낸 이 선장은 가만히 뱃전 아래를 내려다본다. 예상한 대로 바다가 벌떡벌떡 되살아나 있다. 칠흑의 바닷물이 한순간에 짙은 코발트색으로 바뀌었다. 됐다! 이제는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꽁치잡이는 말 그대로 시간과의 싸움이다.

그는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자정을 마악 넘어서고 있었다. 날이 밝기 전, 늦어도 새벽 네 시까지는 투망을 실시해야 한다. 앞으로 네 시간-. 충분한 시간이다.

그는 타월로 천천히 손바닥을 닦았다. 너무 긴장해서인가. 손바닥이 물기로 질펀했다. 이게 도대체 얼마만인가. 그 동안의 온갖 것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급해서였을까, 모든 게 처음부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날씨부터 그랬다. 배가 모항인 감천항을 출항한 것은 꼭 20일 전의 일이었다. 어장은 일부변경선과 인접한 동경 170도선이었으므로 쉬엄쉬엄 하더라도 열흘이면 거스름돈이 남을 항정이었다. ………………(하략)………………

 

□ 천금성,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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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록 문예지 : <해양과 문학> 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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