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게 묻고 싶다(김서련)

등록일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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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게 묻고 싶다

 

철썩철썩. 파도 소리가 귓전에 달라붙는다.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소리는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는다. 오래 들어서인가. 파도 소리가 바다를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들을 들려주는 것 같다. 중얼중얼. 숨이 막힐 것 같은 침실에서 나는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인다. 밤새 서서 작업한 발은 퉁퉁 붓고 어깨는 욱신욱신 쑤신다. 오늘 새벽 두 시경, 배 주변에 등장하여 오징어가 모여 있는 곳을 온통 휘저은 고래들의 행적이 문득 궁금해진다. 어디로 갔을까. 혹시 우리 배를 따라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놈들 때문에 어획량이 평소 조업량의 절반 수준도 되지 않아 우리는 지금 다른 오징어 떼를 찾아 떠나고 있는 중이다. 좀 전에 붙인 파스를 뜯어내고 새 파스를 붙인다. 싸한 기운이 피부에 스며든다. 통증이 조금 가시는 것 같다. 고단함의 연속이다. 매끼마다 음식을 준비하고 밤새도록 고기도 낚아야 해. 오징어가 잘 잡히면 낮에도 잡아야할 때도 있고. 잠도 몇 시간 밖에 자지 못해. 그래도 하겠어? 간절하게 배를 타고 싶어 하는 내게 고등학교 동창인 선장이 말했다. 할 수 있어. 큰소리를 쳤지만 속으로 은근히 걱정을 하기는 했다. 생전 처음 해 보는 뱃일이었다. 하지만 아프지 않고 건강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고 마음을 돈독하게 먹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힘들 줄이야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배에서 내리고 싶다. 남은 기간을 손꼽아 본다. 한 달 계약으로 탔으니 아직 이십 일이 더 남았다. 그때까지 어떻게 견디나. 휴우,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흘러나온다. 몸은 천근만근인데 머릿속은 시간이 흐를수록 맑아진다. 한참 동안 잠을 청하다가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나 달콤한 잠에 떨어진 선원들을 한 번 훑어보고는 밖으로 나온다.

뱃전에 붙어 서서 바다를 바라본다. 주위는 푸르고 흰 빛뿐이다.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푸른 하늘과 눈이 부실 정도로 은빛 보석가루로 꽉 채워진 바다가 단단한 덩어리로 뭉쳐져 있다. 날카로운 칼로 그으면 두 동강이 날 것 같다. 배가 지나갈 때마다 스윽 길을 터 줬다가 다시 뭉쳐지는 푸른 빛 덩어리. 깊고 깊은 곳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고요하게 숨을 죽이고 있는 것 같다. 더 깊은 곳에는 삶의 진실이 웅크리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해답을 지니고 있을 것 같다.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보던 김의 눈빛이 자꾸만 눈꺼풀에 매달린다.

박이 갑판으로 나온다. 철제 난간을 붙잡고 올라오는 박은 누군가 자신의 잠을 깨운 듯 인상을 잔뜩 쓰고 있다. 날카롭게 찢어진 눈과 번뜩이는 눈빛, 세모꼴인 하관, 툭 불거진 광대뼈. 한 번도 해적을 본 적이 없지만 해적이라면 저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할 정도로 인상이 험악한 친구다. 거기다가 입도 걸쭉하고 성질도 지랄 같다. 날씨에 따라 변하는 바다처럼 종잡을 수 없다. 그러나 뱃일 하나는 끝내주게 잘한다. 약 20년 동안 어선을 탄 베테랑답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곧잘 해결하고 손 감각도 있으며 이것저것 아는 것도 많다. 나는 초짜이고 그는 고참이지만 서로 나이가 같아 말을 터놓고 지낸다. 툭하면 낚싯줄이 엉켜서 고생하는 나는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덕분에 처음보다 낚시 실력이 붙어 한 바구니 가득 고기를 낚기도 한다.

담배 있어?

낮은 목소리로 박이 내게 말을 건넨다. 고개를 돌리자 박과 눈이 마주친다. 대게의 살을 발라 먹는 가위처럼 찢어진 눈매가 매섭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고 라이터로 불을 붙여 준다. 훅, 그가 내뿜은 담배 연기가 공중으로 흩어진다. 나도 담배를 꺼내 피우기 시작한다. 둘은 나란히 바다를 바라보며 말없이 담배만 피운다.

잠도 오지 않고… 간단하게 한 잔 할까?

박이 말한다.

그러지 뭐.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흔쾌히 대답한다. 빠른 걸음으로 조리실에 간다. 어젯밤에 오징어와 함께 낚은 복어가 다라이 속에서 꿈틀거린다. 오늘 저녁에 푹 삶아낼 작정이다. 좋았어. 맛이 끝내 주네. 자 한 잔들 마셔. 아내와 사별하고 아이들을 노모에게 맡기고 있는 선장은 선원들에게 돌아가면서 술잔을 돌릴 테고 2항사인 A는 한 잔 술에 붉어진 얼굴을 밥그릇에다 푹 박고 숟가락질을 하겠지. 내가 들은 그의 사연은 이렇다. 해양 대학을 졸업한 그는 커다란 포부를 안고 배를 탔다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내렸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아내 때문이었다. ………………(하략)………………

 

□ 김서련, 1998년 ≪월간문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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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록 문예지 : <해양과 문학> 11,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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