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리 소녀(이미욱)

등록일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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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리 소녀

 

1

소녀는 수족관에 들어가 있었다. 어느 별에 사는 외계인 같고 어느 순간 사라지는 UFO 같은 해파리가 있는 수족관이었다. 해파리는 몸을 조였다 폈다 하면서 흐느적거렸다. 친숙한 얼굴의 소녀는 물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소녀의 얼굴은 아주 편안했고 눈빛은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진정제와 같이 부드럽고 안온했다. 소녀는 해파리의 촉수에 독소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유로이 부유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듯,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듯, 소녀는 해파리 수족관에 들어가 있었다.

소녀와 해파리가 들어가 있는 수족관은 가로 2미터, 폭 1미터, 높이 1미터가량 되는 대형 수조였다. 수조는 투명도가 뛰어난 고품격 크리스탈이다. 크리스탈 유리는 아무리 수조를 들여다봐도 어지럽지 않게 맑은 시야를 확보해주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은 탓에 흰색 얼룩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소녀의 시선은 수족관의 얼룩 사이로 무엇을 보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수조의 바닥재는 흑사로 속이 다 비치는 투명한 해파리의 실체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수족관의 물은 해수염을 녹인 해수였다.

수조에 들어가 있는 소녀는 텅 빈 몸처럼 가벼워 보였다. 소녀의 몸은 보얗게 굳어 있었다. 갓 태어난 아기처럼 탱탱하고도 쭈글쭈글한 주름이 잡혀 있는 몸은 옅은 선홍빛을 뿜어냈다. 붉은 거미줄을 쳐 놓은 듯한 흉터가 소녀의 몸을 에워싸고 있었다. 해파리가 유영할 때마다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결이 소녀의 흉터를 지우는 것 같이 보였다. 물의 방향을 따라 부유하는 소녀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따가운 물의 비늘 때문인지 소녀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소녀의 수족관 생활은 쉬운 일도 아니지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수조 안에서 소녀가 특별히 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해파리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게 전부였다. 소녀는 해파리가 촉수의 독침으로 플랑크톤이나 작은 물고기를 마비시켜서 먹을 때와 배설물을 입을 통해 배출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해파리가 촉수를 들어 올리고 내리기를 반복하면 소녀는 해파리의 몸짓처럼 유영했다. 그것은 마치 구원의 몸짓처럼 메시지를 전달하는 언어의 힘보다 더 우월하게 보였다. 소녀의 굳은 몸은 해파리의 촉수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더없이 단단해져만 갔다. 소녀는 단 한 번도 눈을 감지 않았다. 소녀의 시선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 한 곳을 주시하는 것만은 분명했다. 소녀는 매일 눈을 뜬 채로 지냈다. 잠을 자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소녀는 수족관에서 나오지 않았다. 소녀가 언제부터 수족관에서 투명한 몸의 해파리와 함께 지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다만, 확실한 건 소녀가 해파리가 든 수족관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강주밖에 없다는 것이다. 광활한 우주 안에서 그 사실은 너무 보잘 것이 없는 일이거나 예상치도 못한 큰 일일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이 알려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을 할 수 없는 불안한 일임은 분명했다. 강주는 그 사실을 입 밖에 꺼내는 것이 일종의 천기누설 같았다. 그래서 수조 안의 소녀를 우두커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2

강주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하지 못해서 병든 신하처럼 병이 들었다. 증세는 속이 안 좋다는 것뿐이었다. 강주의 자체진단으로는 소화불량, 위염,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췌장염은 분명히 아니었다. 병명을 알 수 없는 답답함에 뒷골까지 당겨 왔다.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머리가 징징 울렸다. 강주는 타이레놀을 하나 먹고 자리에 누웠다. 잠이라도 잤으면 했지만,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는 더 아파졌다. 그러다가 속이 메스껍더니 무언가 울컥 올라왔다.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했다.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른 강주는 택시를 타고 가까운 병원의 응급실을 찾았다.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너무 아파요!”

강주의 호소에 의사는 언제부터 아팠는지 뭘 먹었는지 등 자꾸 물어보기만 했다. 강주는 구토를 한 번 한 뒤 진통제를 맞고, 링거를 하나 달고, 휠체어에 앉아 끌려다니면서 CT를 찍었다. 그리고 다른 진통제라며 주사를 맞고 침대에 한참을 누워 있었다. 정신이 들자 의사가 찾아왔다. 의사는 CT 사진을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하략)………………

 

□ 이미욱, 200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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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록 문예지 : <해양과 문학> 11,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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