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비소리(김현)

등록일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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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비소리

 

휘리릭 하는 휘파람과 함께 잠녀의 머리가 물 위로 둥실 떠올랐다. 이제 곧 만조가 시작 될 시간이었다. 한쪽 팔을 두룽박에 걸치고 다른 손으로 멍게와 해삼이 든 망사리를 잡아 쥔 잠녀가 익숙하게 몸을 놀려 바위 곁으로 헤엄쳐 갔다. 잘 익은 포도 보다 검붉게 그을린 얼굴이 저만치 저물고 있는 해 아래 비쳤다. 평생을 바다에서 단련된 모습은 강인해 보였지만, 골진 주름마다 모진 세월을 이겨낸 고단함이 켜켜이 담겨 있었다. 비릿돌까지 다가간 잠녀가 날렵한 몸놀림으로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동네에서 비릿돌로 부르는 펀펀한 바위는 해녀들과 지금은 거의 없어진 머구리들이 물질 중에 간혹 올라와서 쉬거나 배를 기다릴 때 이용했다. 때로는 해녀들이 물밖에 나왔을 때 모닥불을 피워 언 몸을 녹이는 불턱 역할도 했다. 동네 사람들과 더불어 세월을 견뎌왔던 바위는 시골의 간이역처럼 잠깐의 휴식을 주는 쉼터였다.

마을의 끝에 붙어있어 바다와 가장 가까운 잠녀의 집에서는 마루에 앉아서도 비릿돌이 훤히 보였다. 잠녀는 자주, 하루에도 서너 번씩 바다 속에 유연히 누워있는 바위를 바라보았다. 그곳은 남편이 묻혀있는 무덤이기도 했지만 마음을 더 잡아끄는 이유는 고향 제주도 금성리 바다를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처음 어머니를 따라 물밑 속을 자맥질해 들어갔던 열한 살 때의 바다 속을 잊을 수 없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물고기들이 비늘을 세우고 헤엄쳐 가고, 어머니의 망태에서 쏟아져 나오던 전복과 소라와 말똥성게가 손에 잡힐 듯 눈앞에 펼쳐졌을 때의 신비로움. 일곱 살부터 헤엄을 치며 놀았던 잠녀는 열다섯 살에 하군 해녀가 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애기상군이란 호칭을 얻었다. 어린 소녀이면서도 상군 해녀처럼 물질이 능란하다는 해녀사회계층의 영광스런 훈장이었다.

제주의 여느 가정들처럼 잠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타고난 바다사람이었다. 어머니는 먼바다까지 나가는 배 물질이 빼어난 대상군 해녀였고 아버지는 소형 선박으로 통발을 이용해 문어나 가자미, 오징어를 잡았다. 제주의 여인답게 어머니는 억척스레 부지런하고 생활력이 강했다. 절대 쉬는 법이 없어서 물질을 하지 않을 때는 반드시 집 뒤에 붙은 작은 밭에 가 있었다. 어머니의 기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잠녀도 어려서부터 몸이 빠르고 영리했다.

잠녀의 일생 중 절반은 바다에 떠 있었다. 지워진 짐이 너무 무겁고 버거워서 달아나고 싶을 때도, 죽음보다 더한 절망과 고통 속을 헤매 일 때도 바다에 떠있었다. 바다에 들어가면 꽉 막혔던 숨통이 차라리 트이는 것 같았고 밤잠을 훼방하던 통증도 사라졌다.

이제 물질을 할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 지도 몰랐다. 이십 년 전부터 앓아온 무릎과 어깨 통증이 부쩍 심해졌다. 거기다 호흡이 불규칙하고 숨이 가쁜 증세까지 겹쳤다. 숨이 차니 당연히 잠수시간도 자꾸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젊었을 땐 3분 가까이 견디기도 했지만 지금은 어림없는 일이었다. 오늘도 수확이 별로 좋지 않다. 나빠진 건강 탓에 작업량이 전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데다 갈수록 바다 속 자원도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었다. 하긴 어딜 가도 양식으로 키운 상품이 넘쳐나는 세상이었다. 해녀들의 수입원이 줄어드는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요즘 세상에 힘든 물질을 누가 배우려 하기나 할까하는 생각이 들면 씁쓸해졌다. 잠녀처럼 제주도에서 시집와 살던 해녀들은 고인이 되었거나 살아있는 사람도 서너 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어린 축에 드는 해녀 몇 명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들도 이미 오십이나 육십을 넘긴 나이였다.

잠녀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한낮에는 더위가 느껴지는 초여름 날씨였지만 바다 속은 아직 소름이 돋을 만큼 차고 시렸다. 낮게 가라앉은 구름이 기어이 비를 뿌릴 모양이었다. 그나마 한 달에 서너 번 밖에 못하는 물질이 끝난 때라 다행이었다. 모레는 날씨가 좋아야 될텐데 하고 잠녀가 중얼거렸다. 바닷가 모래밭에서 행해질 굿 날에 비가 오면 여간 낭패가 아닐 터였다. 모레는 남편의 첫 번째 기일이다. 작년 이맘 때 쯤 남편은 술이 취한 채로 바다에 들어갔다 돌아오지 못했다.

빗방울이 하나 둘 듣는데 마침 배가 왔다. 작은 배가 비릿돌 부근에 닿기도 전에 배에서 어촌 계장이 빨리들 타라고 소리치며 손짓했다. ……………(하략)…………………

 

□ 김현, 1999년 ≪한국소설≫ 신인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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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수록 문예지 : <해양과 문학> 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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