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바다로안가다(천금성)

등록일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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漁夫, 바다로 안 가다

 

1.

부두는 고깃배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방파제 너머에서도 어시장을 향한 배들이 파도를 타넘느라 연신 엉덩방아를 찧어대고 있었다. 아직도 경매는 한창이지만 한 발 늦은 배들은 안달이 여간 아니었다. 경매가 고비를 넘기면 그만큼 값이 떨어지니까 서두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고깃배란 우선 많이 잡고 보아야 하지만, 타이밍을 맞추는 게 더 바쁘다. 수산물은 원래부터 시간을 다투는 생물이기 때문이었다.

자갈치시장 쪽도 부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곳은 억척스러운 자갈치 아줌마를 상대로 한 소형 어선들의 차지였다.

어획물을 양륙하는 배의 갑판은 바닷물로 흠씬 젖어 있었다.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어창 속에서는 펄떡거리는 활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씨알 좀 보소!”

기다란 나무자루 끝의 뜰채로 연신 어획물을 퍼 올리던 어부가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요새 같다면야 무슨 걱정 있겄노!”

“그라이 말임더, 선주님예, 이따 쏘주나 한 잔 사 주이소.”

“알았다카이!”

선주라 불린 콧수염은 연신 헛기침이었다.

무릎까지 올라온 긴 장화를 신은 통바지 차림의 아줌마 하나가 갈퀴로 질질 끌고 온 밤색 다라이를 디밀고는 말했다.

“선주님예, 여기다 굵은 거로 마 꽉 채아 주이소.”

“안 그래 싸아도 오늘은 씨알이 전부 다 굵은 기라.”

아줌마 말을 콧수염이 받았다. “와 그리 늦었는 기요? 조금만 늦었서도 돌아갈 기 없을 뻔했다 카이.”

농담이지만, 아줌마로서는 뜨끔한 소리였다.

“그기 말이라꼬 하는교? 내사 물건 못 받으몬 죽는 기라예.”

“아따, 엄살은! 김해 댁은 욕심이 많아 그기 탈인 기라.”

“이기 욕심이라꼬예? 이리 안 하몬 당장 쪽박을 찰 낀데.”

콧수염은 그만 허허 웃고 말았다.

“갑판장, 남은 거는 마 김해 댁 몽땅 주 삐리소.”

뜰채로 어창을 훑고 있던 어부가 알았다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도 한참인데 어시장은 벌써부터 한낮이었다. 아니 어황만 좋다면 어시장은 언제나 밤낮 구별이 없었다.

 

2.

멀찌감치서 콧수염이 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던 윤만식 씨는 그만 한숨을 푹 몰아쉬었다. 그 역시 20톤짜리 고데구릿배를 소유하고 있지만, 어장으로 나갈 처지가 못 되니 선주는 무슨 놈의 선주일까.

그가 선주로 있는 고데구릿배 ‘창덕 호’는 그곳 부두 한 귀퉁이에 꽉 붙들어 매어져 있었다.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질 일이었다. 벌써 여섯 달째나 선착장에 묶인 채 출어는 꿈도 꾸지 못 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는 없는 일이었다. 기름 값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어부를 구하지 못 해서도 아니었다. 배를 소유한 어엿한 선주지만, 어장으로 나가면 그 자신 선장 일을 너끈히 해내는데다가 가족과도 같은 세 명의 어부가 일을 나누어 맡고 있으니 말이었다.

고기잡이배라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우선은 자유롭게 어장으로 나다녀야 뭔가를 하는 물건이지, 맥을 놓은 채 저처럼 터억하니 부두에 묶여 있는 한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도대체 무한정 정박지에 묶어 두려고 그 비싼 선박을 소유하고 있단 말인가.

그처럼 일이 꼬인 것은 순전히 ‘고 망할 년’ 때문이었다. 세상에 그런 막돼먹은 계집이 다 있단 말인가. 그 일만 생각하면 윤 선주는 당장이라도 년을 캭! 물고를 내 주고는 자기도 그 칼을 배에다 쿡! 찔러 넣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살인 사건 같은 것도 일어나는구나, 그런 막가는 생각마저 들었다. 창피스러움도 이만저만 아니었고, 도대체가 남세스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형편이 아니었다.

고 망할 년의 주장대로 돈을 빌린 건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돈은 이미 다 갚았지 않은가. 그런데도 당장 조업에 나서야 할 배를 옴쭉도 못 하게 묶어두고 있다. 그래, 그간의 모든 일이 다 내 잘못이라 치자. 윤 선주는 그 동안 고 망할 년이 돈을 갚으라고 하도 성화를 부려대어 조합에서 어렵사리 융통한 대출금으로 빌린 돈 전액을 갚았다. 그런데도 고 망할 년은 아주 잘못된 차용증서를 내밀며 그 돈에서 단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고 떼를 쓰고 있다. 아니 거기에다 제멋대로 기재한 장부를 내보이며 이제는 4천만 원도 더 넘는다고 법정에서까지 탕탕 큰소리를 치고 있다. 고 망할 년이야 그렇다 치고 그 말을 곧이곧대로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판사라는 작자는 또 뭔가. 누군가가 말했다. 송사는 않는 게 좋고, 만약 불가피하게 법정으로 나가더라도 상대가 여자일 경우에는 더는 판결을 기다릴 것도 없이 여자가 요구하는 걸 하나 남김없이 몽땅 들어 주는 게 상지상책이라고.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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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금성,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 작품 수록 문예지 : <해양과 문학> 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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