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기

등록일202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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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기

강대종 I 시인

 

 

내가 스물다섯이 되는 해였다

춘분의 날, 바다는 저물었다

부산항의 출항은 첫 인생의 항해였다

멀리 수평선 바다는 노을이 깔렸지만

한낮의 새 날개를 펼치듯 은빛 저녁의 부둣가 바다

뱃고동 소리에 물새는 푸드덕 바다를 날아오르고

산만큼 큰 배의 첫 출항은

바다에 대한 나의 첫 기억으로 남는다

 

출항을 서두르는 선박에 출항기 펄럭이고

교등이 켜지며 브리지 등도 빛을 밝혔다

배를 처음 경험하는 선원으로

차도처럼 표시되지 않은 뱃길 출항은

어느 항구에 정박할지 교육은 받았지만

출항조차 궁금한 의문은 한둘이 아니었다

 

남해 오지마을 산동네에서 자란 나는

바다를 바라본 적도 많았고

크고 작은 목선, 고깃배를 보았지만

야산만 한배를 타는 신기하다 못해 꿈을 꾸는 항해

부산 관문을 뒤로 바다의 해는 저물었다

얼마의 항해인지 달리는 뱃소리는

선실 잠에서도 계속 들렸다

승선원 깨우는 신호에 갑판 오르니

사방은 무엇도 뵈지 않는 벌판으로 배에 실려 가는

나는 어느 항구의 하선인지

섬 하나 볼 수 없는, 배 닿을 곳 망망했다

 

해도를 펼치니 태평양 건너를 향하는 뱃길, 북대서양!

가슴이 설레는 큰 바다 한가운데를

배는 횡단하고 있었다

 

컨테이너가 선적된 밤과 낮을 거치는

항해, 떠날 때의 궁금했던 바다가 외로웠지만

이제 뱃사람이라 생각하니 갑자기

사방이 컴컴해지기 시작했다

어두워지는 바다를 처음 보는 순간

피할 곳이 없다는 생각과 후회로 떨려오는 공포

바다는 화를 내며 큰소리치는 파도

뱃전을 치고 배 바닥에 올라탈 듯 뛰었다

해풍이 바다를 흔들고 선박이 뒤뚱거렸다

 

갑판에 불가사리처럼 착 달라붙은 나

어린 날 어머니 기도를 떠올렸다

무언가 무사안일을 두 손으로

주문인 듯 외우던 모습에서

‘포세이돈, 하나님! 하나님! 을 외쳐 불렀다

배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살려 달라는

애원조차 서툰 태평양 너머 북대서양으로

 

항해조차 멈춘 험난한 첫 출항의 북대서양!

사나운 파도 소리는 사라지고

언제인 듯 배는 다시 항진 중이다

갈수록 항구에 닿을 날 기다리는 무한한 항해

첫 출항 태평양 횡단, 북대서양 그 너머로

 

그 후

나에게 기억으로 남은 항해, 어쩌면

내 인생의 파란만장을 알려준 그때, 그 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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