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에게
이제 너희가 헤쳐가야 할 바람과
거센 물결들
거기에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산다는 것은 물을 지나서 더 깊은 물로 가고
고통을 통하여 더 큰 고통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언젠가 너희들도 알게 되겠지
바다는 빛나다가도 쉬 어둠이 오고
세상은 그물처럼 촘촘히 덫으로 엮여
이루어진 곳이란 것도 알게 되리라
눈에 보이는 세상 어디를 가도
고통은 촘촘 저인망 그물코에
입 벌리고 있으리니
더듬더듬 물결을 지나면서
강자만 살아 남는 바다의 법도 익히게 되리라
세상의 많고 많은 바람에 살이 패고
소금기에 눈은 아프리
그러나 삶은 참고 견뎌가는 것
찔레꽃 꽃잎처럼
제 손에 제 살 찔려 피 흘리면서도
때론 웃음으로 파도를 헤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다시는 돌아보지 말자 앞니를 깨물고도
눈감으며 바다는 너울너울
그리운 별이 되어 꽃이 피는 곳
해지고 달뜨면 흉흉한 수초들
불빛처럼 떠다니고 한번의 입질로도 삶은
세상의 길 밖으로 밀려나고 말겠지만
바다는 너희의 영광, 꽃밭이란다
오늘 네가 헤쳐 가는 이 물길이
너와 나의 작별일지 모르고
자유인지 감옥인지 알 수 없는 저 물살도
한때의 사랑이리라
술 취한 기분으로
때로는 그리움과 기다림에 훌훌
몸을 적시고
청빈한 해류를 따라 떠돌 적에
여린 것들아,
오늘 네가 가는 이 바람 이 물 속이
이승이라면 저승 또한 바다이기에
슬픔도 울분도 눈감으면 아득해 보이지 않는
바다 속의 절망도
너희의 축제, 희망의 불꽃이리라
□ 이충호, 시인
◇ 자료출처 ㅣ 해기 2005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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