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금도 명천마을

등록일2021-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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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이 송이송이 나리는 밤

명천마을 사내 대여섯

노루꽁지만 한 하루해 싹둑 잘라먹은 선창가

폐선처럼 누운 선술집 뻘건 갈탄난로에 둘러앉아

시린 해풍에 저린 몸을 미역처럼 말린다

이따금 토해지는 굽갈래 기침 소리

갈탄난로 위 여린 꼬막들은

해소끼 같은 허연 거품을 내뿜고

먼 바다 거센 파도 수만 번 접었다 폈을

늙은 사내는 구릿빛 마디 굵은 손

뚝뚝 꺾으며

누런 양푼에 찬 소주를 친다

바다의 삶이란 때론

만선의 깃발마냥 펄럭이던 것인가

맞바람에 시린 냉가슴 쓸어내는 일인가

때 아닌 난파에 찢긴 걸그물 같은

순항치 못한 빛바랜 날들을 호명하며

짠기 밴 시린 눈을 연신 껌벅인다

막배 끊긴 선창가

눈은 허풍쟁이처럼 푹푹 나리고

몇은 더 이상 비울 것 없는 가슴에

찬 술을 붓고, 또 몇은

오래전 목젖 깊숙이 삼켜버린

질기디질긴 뿌연 침묵을

밤새도록 찌개처럼 끓인다

 

김회권 | 2002년 ≪문학춘추≫ 등단

 

 

자료출처 : <해양과 문학> 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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