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등록일202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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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

이석재ㅣ시인

 

 

반짝이는 크리스탈 샹들리에 불빛 같이

입항의 기쁨이 은가루로 부서져 내리는

선내 식당의 뿌리박힌 식탁 위엔

부지런한 포크와 나이프들이 왕래하였다

거위였거나 칠면조였던 영혼들이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줄지어 걸어 들어왔고

기름끼가 좔좔 흐르는

입술과 혀와 손가락들이 연주하는 맛있는 소리들이

천상의 음계를 밟고 있었다

그 때

잘 마른 한지 위에 떨어지는 맹독성 붉은 용액처럼

소문 한 방울 툭 떨어졌다

쨍강쨍강 부딪히는 포도주잔 사이로 흘러내리며

슬금슬금 얇은 귀를 적시는 유령들

신선했던 야채들이 갑자기 시들고 있었다

뒷걸음질 치며

서둘러 파장과 악수를 나누는 눈빛들

입항 만찬은

그렇게 슬금슬금 막을 내렸다

아무도 하선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며칠 후

몇몇의 이름이 선원명부에서 지워졌다.

 

□ 자료출처 : <해양과 문학> 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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