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실 소묘

등록일2020-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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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실 소묘

 

 

애를 태워 재를 뿌리는 소리

심연(深淵)을 휘젖는 포효(咆哮)가

비어 있는 가슴으로 내연(內燃)하고 있다.

입항을 서둘러야 할 시간들이

프로펠러 날개 끝에서 맴돌이를 하는 바다,

흘수(吃水)의 부피같은 삶을 부지하기엔

너무나 얇은 벽(壁)

차안(此岸)의 바다, 벽 속에는

온갖 계기(計器)들이 저마다 할 일을 도사리고 있다.

이들이 거짓말을 못하고 점멸(點滅)하는 것은

자신이 기계라는 이유 때문이다.

—거짓말을 해 본 기억이 있습니까?

나는 얼른 대답을 못하고 다소곳이 너트를 죄면서

쏟아 놓은 거짓말들을 하나 하나 기름걸레로 닦는다.

닦고 죄고 기름치는 나의 손가락 사이로

흘수의 부피같은 삶이 젖고 있다.

 

조득춘, 연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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