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항전야 (出港前夜)
돌아오는 배보다
떠나는 배가 더 슬프다
보따리를 싸는 수부의 아내보다
보따리가 더 슬프다
한 생애 묵언으로 버텨온 등대의 장애
파도와 살 비비며 살아온 방파제
저만치 밤바다 저 혼자 놀고 있다
지게차가 앗아 버린 빈 선창
외상값 갚고 난 뒤처럼 허술하다
그럴까 시야가 밝아지며 결명해진다
북동쪽으로 약한 근심 불어오고
정박등(碇泊燈)의 심지를 올리다 라고
정박일지를 적는다
깊게 취한 수부들의 녹슨 노래 몇 소절
부두 끝에서 비틀거린다
씻기운 새벽 햇살이
수평을 흔들어 깨우면
바닷새 몇 마리 감탄하며 파도를 쪼아 먹을 것이다
큰 스님 불 들어 갑니다
거선의 심장에 불을 당기는 다비식을 올리면
수만 개의 불화살이
수만 마리 말의 본능을 일깨워
앞으로 달리게 할 것이다
아, 뒤로 걸어가며 낱낱이 부서지는 짧은 허무여
이별의 하얀 무늬
우리는 그것을 항적(航跡)이라 부른다
장 일 경 ㅣ시인, 수필가
□ 자료출처 : 海바라기 2007년 10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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