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항전야 (出港前夜)

등록일20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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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전야 (出港前夜)

 

 

돌아오는 배보다

떠나는 배가 더 슬프다

보따리를 싸는 수부의 아내보다

보따리가 더 슬프다

한 생애 묵언으로 버텨온 등대의 장애

파도와 살 비비며 살아온 방파제

저만치 밤바다 저 혼자 놀고 있다

지게차가 앗아 버린 빈 선창

외상값 갚고 난 뒤처럼 허술하다

그럴까 시야가 밝아지며 결명해진다

북동쪽으로 약한 근심 불어오고

󰡐정박등(碇泊燈)의 심지를 올리다󰡑 라고

정박일지를 적는다

깊게 취한 수부들의 녹슨 노래 몇 소절

부두 끝에서 비틀거린다

씻기운 새벽 햇살이

수평을 흔들어 깨우면

바닷새 몇 마리 감탄하며 파도를 쪼아 먹을 것이다

󰡒큰 스님 불 들어 갑니다󰡓

거선의 심장에 불을 당기는 다비식을 올리면

수만 개의 불화살이

수만 마리 말의 본능을 일깨워

앞으로 달리게 할 것이다

아, 뒤로 걸어가며 낱낱이 부서지는 짧은 허무여

이별의 하얀 무늬

우리는 그것을 항적(航跡)이라 부른다

 

장 일 경 ㅣ시인, 수필가

 

□ 자료출처 : 海바라기 2007년 10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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