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인식

등록일202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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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인식

황을문 ㅣ 한국해양대학교 명예교수

 

 

인식의 발단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대학 학생들은 IMO(국제해사기구)와의 STCW 국제협약에 의해 1년간 의무적으로 승선실습을 하게 되어있다. 그중에 달포가량은 학교실습선을 타고 원양항해실습을 한다. 1980년 12월 중순 교양과정부 교수로 부임한지 1년 만에 실습선 한바다호에 편승할 행운이 왔다.

타이완 기륭 항을 첫 기항지로 하고 미얀마 랭군에서 인도 캘커타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일본 나가사키에 마지막 기항을 하게 되는 45일 간의 항로였다. 평생 가보기 힘들 나라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난생처음으로 배를 타고 외국으로 나간다는 사실에 마음이 끌렸다. 중학생시절 숙부를 따라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노인이 몰던 외돛배와 거의 흡사한 쪽배를 타고 외줄낚시 해본 한참 후, 여러 번 5톤 정도 외줄낚시 배와 울릉도행 여객선 타 본 경험에 비하면 엄청난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설레는 마음 가득히 안고 드디어 출항. 제주도해역을 벗어나 동지나해에 들어서자 말자 겨울 계절풍인 북풍이 거세게 실습선 뒤통수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3,500톤이나 되는 실습선이 그야말로 마구 흔들어대는 극심한 롤링(rolling)에 일엽편주에 불과해 대자연인 바다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여파가 출항 3일후 기항한 기륭 항에서 타이페이 소재 고궁박물관을 학생들과 관람할 때, 어지럼과 메스꺼움에 한동안 시달렸었다. 소위 뱃사람들이 말하는 상륙 후에 하는 멀미인 갓 멀미였다. 캘커타를 떠나 마지막 기항지 나가사키까지는 보름간의 항정이었다. 마치 호수같이 고요하던 인도양에서 싱가포르 앞 말라카 해협을 벗어나자말자 이번에는 계절풍이 실습선의 이마를 강타하기 시작했다. 배를 옆으로 흔드는 롤링과 달리 앞뒤로 찍는 피칭(pitching)이 남지나해 항해 중 계속되었다. 물결에 파고(波高) 위로 밀렸던 배가 다시 파곡(波谷)으로 떨어질 적엔 ‘꽝’하는 굉음이 며칠간이나 들려 혹시 배가 깨어지지나 않을까 의구심도 들었고, 왜 바다 배는 용골이 뾰족하고 강을 운행하는 배의 용골은 편편한지 이해됐다. 모든 항해자는 바람을 싫어한다. 바람이 물결을 일으키고 그 물결이 멀미를 불러온다. 더 심하게는 배를 난파시킬 수도 있다. 배에서 해서는 안 될 몇 가지 금기사항 중에 “휘파람을 불면 안 된다!”가 가장 엄중한 것도 태풍소리와 유사해 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기우 때문 일 것은 분명하다. 이마를 때린 계절풍 탓에 예정보다 하루 늦게 조도에 귀항하고 46일간의 실습항해의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학생들은 배에서는 항해와 기관사가 되기 위한 작업복차림의 기능인이지만, 기항지에 상륙할 때는 말끔한 정복차림에 작은 태극기 흉장을 달고 현지인들과 조우한다. 소위 준 외교관의 역할도 하는 것이다. 졸업 후 각 선사에 배정되어도 바다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장래 해기사로서 역할과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긍심 함양에도 유익할 것이란 인식이 들었다. 물론 바다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긍정적인 인식이다. 이 바다의 역군(役軍)들에게 그 인식을 심는 방법에 대해 한 동안 고심하다가 실제는 물론이고 상상까지 동원할 수 있는 문학을 선택했다. 이후 해양관련 서적은 물론이고 어떤 종류의 책자라도 물과 바다가 등장하는 부분에는 밑줄을 쳐두었다. 우선 나 자신부터 바다에 관한 일반적인 상식은 물론 인류에 대한 바다의 존재의미를 알아야했기 때문이다.

 

의외의 기회

1999년 종합대학으로 발전이란 학교사정에 밀려 교양과정부가 해체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2년제 전문대학에도 존립하는 교양학부가 4년제 국립대학에서 사라지는 어이없는 사건이었다. 소속교수 10여명은 희망학부나 학과로 가도 좋다는 대학본부의 방침에 따라 모두들 국제대학으로 옮겨갔으나, 해양대 출신이 아니라 항해나 선박에 대해 거의 문외한이라도 나 혼자 해양문학을 들고 전신이 항해학과인 ‘해사수송과학부’를 자원, 학부회의의 인준을 받았다. 의외의 기회가 온 것이다. 대학의 전임교수 의무 강의시간은 주당 9시간으로 되어있다. 새로이 소속된 해당학부에서는 필수로, 여타 2단과대학은 선택으로 주당 3시간 150분 강좌를 개설하게 되었다. 아마도 국내는 물론 세계에도 유례가 없을 4년제 대학 정규과목에 해양문학 강좌가 개설되게 된 연유이다. 이 의외의 결과는 나 자신의 바다와 인간에 대한 인식과 필연도 작용했지만, 그 당시 해사수송과학부 교수들의 사려 깊은 이해와 배려에 지금도 감사한다.

강의를 하자면 우선 교재가 필요하다. 전술한대로 국내만 따져도 최초인데 강좌용 교재가 있을 리 없었다. 문학의 범위는 자로 잴 수 있는 게 아니다.

원양항해실습 편승 후 틈틈이 모아 두었던 자료들을 매 주 유인물로 만들어 학생들에게 배부해 주고 강의를 이어갔다. 이러기를 2년 후, 강의 자료와 어느 선장 일대기에 학생들의 원양항해 실습기를 곁들여 교재를 완성했다. 단지 제목이 문제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요즘 IT와 디지털 컨텐츠에 익숙한 학생들은 따분한 소재를 싫어한다. 그래서 그전에 흔했던 xx론(論) 이란 책자나 강의는 거의 없다. 학생들에게도 책자로 할 적에 어떤 제목으로 하면 좋을지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내용상 제목으로는 해양문학개론과 해양문학입문이 대두되었으나, 다소 진부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집필방침은 상선예비사관 뿐만 아니라 어선과 바다 일에 종사하는 모든 해양인들을 위해 학력고졸 이상이면 소화할 수 있을 정도에 두었기에 부담없이 읽어보라는 뜻에서 ‘해양문학 소요’로 정했다. 소요(逍遙)는 사색하며 산책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최초의 해양문학 교재가 ‘전망’출판사에서 2001년 출간, 2006년까지 교재로 사용하였으나 한 학기에 소화하기엔 분량 면에서 다소 무리였다. 2007년 어선선장일대기를 다룬 ‘해양인을 찾아서’를 중편소설 ‘동상과 우상’으로 분책하고, 그 간의 새로운 자료들로 첨삭한 후 책명도 어느 학생이 제안한적 있는 ‘해양문학의 길’로 바꾸었다. 2018년에는 부경대학 인문역량강화사업단의 지원으로 2차 개정판도 출간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약 3천여 명의 수강생을 배출하였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이들이 모두 작가의 길을 가지는 않겠지만, 해양문학 발전에 어떤 형태로든 일익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 해양문학을 하려는 이들이나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강의와 책자내용 중 제일 요지에 속한다고 간주되는 몇 부분을 소개한다.

 

오디세우스의 실수

실습기간동안 부여된 임무 없이 그냥 편승만 했으니 할 일이 없어 하루에도 몇 번씩 브리지에 올라가 보곤 했다. 기관실보다 탁 트인 시야 무엇보다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륭 항을 떠나 랭군을 향해 며칠간 남지나해를 지날 적에 브리지에서 보이는 것은 오직 바다와 하늘뿐이었다. 그 광활한 수평선에서 대자연의 위용에 저절로 위축되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당직사관에게 브리지 근무 시 수평선을 바라보면 어떤 느낌이 드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위축감과 고독감이 든다고 했었다. 몇 년 후, 5만 톤이 넘는 컨테이너 전용선인 한진 마르세이유호를 9일간 타고 갈 적에도 수평선은 여전히 광활했고, 배 크기에 상관없이 위축감을 느낀다는 당직1항사의 말도 다름없었다. ― 지구상에서 85%가량의 수증기가 바다에서 하늘로 올라가 1주일가량 머물다가 다시 비로 떨어지는 현상을 자연과학에서 하늘을 대표하는 태양과 바다의 ‘순환작용’으로 일컫는다. 지구상의 인류는 물론 모든 생명체는 이 현상 덕분에 살아가고 번성하는 것이다. 이 둘 중에 하나만 없어도 지구는 존재하지 못한다. 수평선은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있는 곳이다. 둘이서만 랑데부하고 있다는 문학적인 상상도 펼쳐볼 수 있다.―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영어명 율리시즈)는 트로이를 함락시킨 여세를 몰아 해신 포세이돈을 무시한다. 율리시즈의 항로는 지중해였다. 태평양이나 대서양보다 상대적으로 좁은 바다라 율리시즈가 수평선을 미처 인식 못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프랑스의 ‘니스’앞바다 에서도 수평선은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포세이돈은 바로 바다자체이다. 그래서 포세이돈을 무시한 것은 바다를 모독한 것이 된다. 이런 관점은 기원전 900년 전에 ‘호메로스’는 이 서사시를 통해 절대로 ‘바다를 모독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남긴 것으로 본다. 세계문학사에서 지략, 모험, 사랑, 효성, 배신, 복수 등 여러 소재로 불후의 명작으로 손꼽히지만, 가장 두드러진 요소는 오디세우스의 실수로 인해 해양문학의 원조로 칭송받게 된 것이다. 21세기 들어 세계석학들 마다 ‘인류의 미래는 바다에 달려있다.’고 말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도 해양오염, 자원남획, 무자비한 매립, 지구온난화에 의한 해수온도 상승 등 오디세우스보다 훨씬 더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바다가 언제까지 이 무례한 실수를 ‘받아’들일지 모르겠으나 오디세우스의 실수가 던져주는 바다를 절대로 모독해서는 안 된다는 경구(警句)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인생은 항해다

언젠가 부산대학교 해양과학과에서 해양문학 특강을 요청해 왔다. 바닷가도 아닌 금정산 산자락에서 해양과학을 한다는 것이 신통하기도 했지만, 해양문학창달을 위한다는 평소 신념에 따라 수락했다. 그러나 1주일에 3시간씩, 150분간을 한 학기동안 하는 강의를 고작 70분에 소화하자니 결론부터 제시할 수밖에 없어 특강용 유인물 A4지 한 장의 제목을 ‘인생은 항해다.’로 정했다.

바다는 언제나 꿈틀거린다. 이 현상을 육지에서 바라볼 때는 파도지만, 큰 배든 작은 배든 바다에 나가서는 물결(wave)로 칭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물결에는 일정한 리듬이 있다. 마구가 아니라 규칙적인 오를락 내리 록의 연속이다. 이 현상을 4자성어로 표현하자면 고진감래(苦盡甘來)와 흥진비래(興盡悲來)로 할 수 있다. 고난 후에 낙이오고, 쾌락 후에 고난이 온다. 이 경구에서는 석가모니가 ‘고난이 없기를 바란다면 인간으로 태어나지 말라!’ 고 했다. 인간은 누구나 삶에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이미 태어난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문이 남는다. 실존주의 철학에서 이 문제를 고난을 인정하면서 더욱더 열정적으로 살아가라고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 있지만, 뱃사람들은 학문을 통해서라기보다 자기 자신의 생존철학으로 터득하고 있다. 먼 바다에 나갔을 때, 갑자기 풍랑이 몰아치면 육지와는 달리 숨을 곳이 없다. 안전한 곳으로 피항 할 때까지 자신과 동료 선원들의 협력에 의해 가진 힘을 다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뱃사람들이 일반인 보다 더 강인한 이유이기도 하다.

 

바다의 본질

오래전 해운대 그랜드호텔에서 개최된 해양문화 심포지엄의 자료집에 서울 S대 저명교수가 ‘바다의 본질은 물이다’란 주장을 했다.

어린왕자를 탄생시킨 생떽스(생떽쥐뻬리의 애칭)는 ‘양초의 본질은 밀랍이 아니라 그 불빛에 있다.’고 설파했다. 밀랍은 양초를 만드는 재료에 불과하듯이 물은 바다를 이루는 필수요소이다. 그래서 바다를 모든 물의 총집합체란 뜻으로 ‘물의 총체’라고도 칭한다. 그러나 본질로 볼 수는 없다.

바슐라르는 󰡔물과 꿈󰡕에서 ‘바다는 모든 인간에게 가장 위대하고 변치 않는 모성 중에 하나이다.’라고 했다. 바다는 우리를 먹여주고, 데려다주고, 잠재워준다. 그렇다면 본질은 무엇일까? 한글과 같은 표음문자인 프랑스어에서 바다와 어머니는 철자가 조금 다르지만 음은 똑같은 ‘라 메르’(la mer=la mere)이다. 옛 프랑스인들이 왜 바다와 어머니를 일체로 보았는지 표의문자인 한자도 보아야 한다.

한자에서는 밭에서 힘쓰라고 밭전(田)자 밑에 힘력(力)를 붙여 남정네 남(男)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여자로서 힘든 바다 일을 감안하면 바다 海자에도 男이나 아니면 아비부(夫)라도 넣어야 할 텐데 ‘어머니란 물에 아이가 떠있는 형상’의 글자를 만들었을까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바로 바다의 모성(母性)을 옛 중국인들이 인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작 생떽스의 말에 공감하고 내가 저술한 교재에도 가장 큰 비중을 둔 바다의 모성을 주장해 왔기에 패널로 간 것도 아니기에 티타임 때, 그 교수에게 일러 주려했으나 무슨 연유인지 그 교수가 미리 퇴장해버려 소신을 피력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바다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은 해양문학의 가장 근본적인 사고에 속한다. 어느 누구도 자기 어머니를 배척하지 않듯이 바다의 모성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부산을 해양문학의 메카로

앞에서 바다를 모독하지 말며 바다 물결의 실존적 사실과 바다의 본질을 살펴본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바다의 존재의미를 문학을 통해 알아보려는 태도였다. 해양문화의 꽃은 해양문학이다. 실제와 더불어 정신세계까지 관여되는 이점이 있다. 20여 년 전에 부산시가 ‘해양 수도(首都) 부산’을 선포하자 해양문학가협회에서도 ‘부산을 해양문학의 메카’로 만들자는 기치를 내걸고 바다가 없는 서울로 진출해 한강유람선 선상에서 ‘해양문학 진흥의 밤’을 개최했다. 후원회장 C&그룹 임병석회장은 물론이고 시인 강은교, 지금은 국제해사기구IMO 사무국장이지만, 당시에는 해수부 임기택 국장도 참석하고 부산일보 최학림 당시 문학담당기자가 첨부터 끝까지 취재했다.

서울, 경기지방에 거주하는 한국문인협회 회원들도 대거 참석해 대성황을 이룬 이날 행사로 해양문학 창달은 희망적이었다.

2004년에는 부산문인들을 대상으로 한국해양대학교실습선 한바다호에서 해양문학선상간담회를 개최해 부산지역사회에서 자리매김을 확실히 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문학단체인 만큼 책자 발간은 필수요건이라 2003년 9월 고 선장시인 김성식의 추모 특집을 필두로 339쪽 분량의 창간호 󰡔해양과 문학󰡕을 부산소재 전망 출판사에서 반년간지로 출판했다. 편집방침은 협회회원만을 위한 기관지가 아니라 해양문학 전문지를 지향하였으니 국내최초의 해양문학전문지 인 셈이다. 출판비는 제8호까지는 정기회비와 스폰서들의 광고비 등이 있었으나 대부분은 C&그룹의 후원으로 충당했다. 그러나 C&그룹이 해체되는 통에 황천항해에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2006년도에 해수부로부터 사단법인 인가는 받았으나 지원이라고는 전혀 없던 터에 2017년 부산문화재단이 출간비를 지원했다. 신청한 액수보다는 좀 적어도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라 이전 회장단이 살림을 잘살아 모아 둔 약간의 이월금 등을 감안, 원고료도 어느 정도 상향조정할 수 있었다. 해양문학 관련 원고 청탁이 쉽지 않을 뿐더러 후한 원고료가 좋은 글을 모은다는 것이 출판계의 철칙이기 때문이다. 한번 지원이면 특별한 사유 없는 한 계속이라는데 무슨 연유인지 그 후로는 전혀 지원이 없다가 금 년 들어 책 한번 발간할 정도 지원되었다고 한다. 해양수도를 표방하고 있는 부산시의 처사로는 너무 약하다. 협회는 협회대로 자구책을 마련해야겠지만, 적어도 반년간은 유지되도록 지속적인 지원을 바란다. 바다를 생계수단으로 만 알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면서도 존중하는 경외심이 절실하다. 이것이 바다의 존재를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다. 바다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에 해양문학은 뿌리를 튼다. 언젠가 해수부가 주최하고 한국문인협회가 주관한 해양문학상심사에서 부산이 서울을 능가할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해양문학만큼은 이길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적이 있다. 그 장담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도록 부단한 노력을 하는 것이 부산이 해양문학의 메카가 되는 길이 될 것이다.

 

□ 자료출처 : <해양과 문학> 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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