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해양작품 감상해설 우수원고

등록일20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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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작품 : 김광균의 '오후(午後)의 구도(構圖)'

 

바다 가까운 노대(露臺) 위에
아네모네의 고요한 꽃망울이 바람에 졸고
흰 거품을 물고 밀려드는 파도의 발자취가
눈보라에 얼어붙은 계절의 창 밖에
나직이 조각난 노래를 웅얼거린다.

천장에 걸린 시계는 새로 두시
하이얀 기적 소리를 남기고
고독한 나의 오후의 응시 속에 잠기어 가는
북양 항로의 깃발이
지금 눈부신 호선(弧線)을 긋고 먼 해안 위에 아물거린다.

기인 뱃길에 한 배 가득히 장미를 싣고
황혼에 돌아온 작은 기선이 부두에 닻을 내리고
창백한 감상(感傷)에 녹슬은 돛대 위에
떠도는 갈매기의 날개가 그리는
한 줄기 보표(譜表)는 적막하려니

바람이 울 적마다
어두운 커튼을 새어 오는 보이얀 햇빛에 가슴이 메어
여윈 두 손을 들어 창을 내리면
하이얀 추억의 벽 위엔 별빛이 하나
눈을 감으면 내 가슴엔 처량한 파도 소리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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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김광균은 낯설지 않은 시인이다. 교과서는 물론 고등국어, 모의고사 등의 지문에서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유명한 작품은 병풍처럼 나열되지만 요즘 같은 가을날, 도시 풍경을 쓸쓸하고도 감각적으로 그린 ‘추일서정’이나, 가장과 시인의 경계에 선 작가의 고민을 가장 사실적으로 그린 ‘노신’이 대표적으로 떠오르고, 공감각적 심상의 예로 자주 손꼽히는 ‘외인촌’의 마지막 행 ‘푸른 종소리’까지 마치 차곡차곡 낙엽처럼 그의 그림자가 쌓이는 듯하다.

 

하지만 작품을 고른 이유는 그래서만은 아니다. 그의 시는 슬픈 정서 속 신선한 색채성을 부여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결론에는 눈물만 고이는 게 아니라 승화가 이루어진다. 사람마다 같은 의견을 전해도 어떤 감정을 남기느냐는 다르다. 어조와 화자의 인상에 의해 결정되는 결론이 있는데 김광균은 언제나 이것을 반전시킨다. 마치 잿빛풍경에 파격적인 사물을 갖다 두는 화가 같다. 게다가 이번 작품은 처음 접했고, 머릿속에 계속 화려한 풍경화를 그려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유년의 기억으로 나를 인도했다.

 

친가는 경남의 어촌마을이다. 서울에서는 다섯 시간 정도가 걸려서, 비포장도로를 거치는 동안 몇 번이나 멀미를 해야 도착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랑곳 않고 방학이면 어김없이 가족들을 내려 보냈다. 갈 때의 고생을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지만 돌아올 때는 정이 들어 눈물이 고이는 게, 꼭 아버지를 닮은 곳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사고로 다치고 기억을 잃은 후에야 고향으로 돌아가 쉴 수 있었다. 그 때에서야 비로소 아버지와 시골에서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다는 눈부시도록 황홀하지만 너무나도 아프다. 이제 거기에는 조부모도 아버지도 아무도 없지만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은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애증의 장소에 담긴 내 정서를 가장 닮게 그린 작품이 남 같지 않았나 보다.

 

작품에서는 바다의 풍경을 폐쇄적이고 어둡게 그리며 연의 화면을 시작한다. 얼핏 꽃망울이 졸고 파도의 발자취가 보이는 3행까지 평화로운 풍경 같지만 ‘얼어붙은’이나 ‘조각난’ 등에서 상처받고 위축된 듯한 정서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위장된 묘사와 활유법이 쏜살처럼 마음을 파고 든다. 2연은 오후에 조용해진 해변에서 멀리 떠난 배를 홀로 바라보는 화자의 뒷모습이 연상된다. 시선은 이제 완전히 눈부신 바다로 이동되었다. 시상이 전환되는 것 같지만 다시 3연에서는 노을 질 무렵 들어오는 배를 묘사한 장면에서 ‘창백한 감상’, ‘녹슬은 돛대’도 모자라 ‘적막하려니’라며 직접적으로 감정을 제시하기까지 한다. ‘적막하다’는 것은 그저 조용하기만 하다는 분위기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다. ‘쓸쓸하고 외롭다’는 정서가 분명히 서려 있다. 절제와 함축이 요소인 운문에서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말할 만큼 그에게는 바다가 쓸쓸한 곳이었을까.

 

집필 시기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북녘이 고향인 그가 남으로 내려와 오랜 시간 군산에서 지냈다고 알고 있다. 금년 여름, 군산의 여러 섬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무척 광활한 바다를 앞둔 곳이었다. 그의 고향인 개성의 지형을 찾아보니, 분지이지만 지리적으로는 예성강과 임진강이 둘러싸고 있어 섬 같다고 한다. 게다가 휴전선 인근이라고 하니 실향민의 입장에서 지척에 있는 고향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싶다. 내가 아버지와 바다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조금은 비슷할까. 사람이 창백한 표정을 지을 때는 수심이 깊거나 충격적인 일을 겪거나, 극도로 우울하거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라는 생각을 한다. 배 가득히 장미를 실은 채 도착한 것처럼 아름다운 항구의 모습 바로 다음에 어울리지 않게 위와 같이 비관적인 정서를 배치한 이유는 대비를 위해서일 것이라는 예상이다. 빼어나게 아름다운 풍경에 비극적인 상황을 함께 놓으면 비극이 더 강조되지 않는가. 아버지를 화장하고 떠나보내는 날이 그랬다. 아직 더위가 찾아오지 않은 유월이었는데 유독 햇빛이 눈부셨다. 그 가운데 검은 상복을 입고 유골함을 품에 안은 채 납골공원으로 향하는 나는 외딴 섬 같았다. 안장시킬 곳은 숲이 우거지고 높푸른 하늘이 천국 같은 곳이었는데 장례식 때까지도 참았던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세상은 아무런 타격도 없고, 나만이 그 수려한 곳에서 끔찍한 슬픔을 감당해야 했다. 고향을 닮은 타향에서 향수와 슬픔을 삼키며 시를 썼을 그의 애잔함이 파도처럼 여기까지 와 닿는다.

 

마지막 연은 바닷바람에 울던 친가의 방문을 생각나게 했다. 겨울에나 여름에나 바람에 떨리는 소리가 들리고 쉽게 해지기도 했지만 아침이면 창호지를 통해 전해지는 따뜻한 온도와 평온하게 찾아드는 빛의 밝기가 순하기 그지없었다. 경상도 출신인 아버지는 바닷바람처럼 센 억양과 무뚝뚝함을 가진 사내였지만 귀갓길에 술 드시고 겨우 용기를 내, 어린 딸을 으스러져라 껴안아 주던 사람이었다. 이제는 사람도 떠나고 집도 비어서 을씨년스러운 고장이 되었지만 내 안에는 그 바다, 그 아버지, 그 시간의 별빛 같은 추억이 있어서 빈 집에서 홀로 지내도 쓸쓸하지 않을 것 같다. 눈 감으면 처량한 파도 소리뿐이라는 화자도 실은, 고향을 가만히 그리고 있지 않았을까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처량한 신세가 아니라는 말을 건네고 싶다. 그리고, 그와 내 아버지가 부디 천국에서는 처량해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최선화, 서울시 은평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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