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탄

등록일2020-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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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해탄

 

 

달밤에 현해탄을 건느며

갑판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니

몇 해 전 이 바다 어복에 생목숨을 던진

청춘 남녀의 얼굴이 환등같이 떠오른다.

값 비싼 오뇌에 백랍같이 창백한 인텔리의 얼굴

허영에 찌들은 여류예술가의 풀어헤친 머리털,

서로 얼싸안고 물 위에서 소용돌이를 한다.

 

바다 위에 바람이 일고 물결은 거칠어진다.

우국지사의 한숨은 저 바람에 몇 번이나 스치고

그들의 불타는 가슴 속에서 졸아붙는 눈물은

몇 번이나 비에 섞여 이 바다 위에 뿌렸던가.

그 동안에 얼마나 수 많은 물 건너 사람들은

‘인생도처유청산’을 부르며 새 땅으로 건너왔던가.

 

갑판 위에 섰자니 시름에 겨워

선실로 내려가니 ‘만연도항’의 백의군이다.

발가락을 억지로 째어 다비를 꿰고

상투 자른 자리에 벙거지를 뒤집어 쓴 꼴

먹다가 버린 벤또밥을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강아지처럼 핥아먹는 어린 것들!

 

동포의 꼴을 똑바로 볼 수없어

다시금 갑판 위로 뛰어올라서

물 속에 시선을 잠그고 맥 없이 섰자니

달빛에 명경 같은 현해탄 위에

조선의 얼굴이 떠오른다!

너무나 또렷하게 조선의 얼굴이 떠오른다.

눈 둘 곳 없이 마음 붙일 곳 없이

이슥토록 하늘의 별 수만 세노라.

 

* 1926년 2월

* 심훈

* 한국명시(최동호편저) 상권 36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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