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항의 밤

등록일2020-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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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항의 밤

 

 

겨울에도 출렁였다.

묶인 배들은 기우뚱거리고

황혼 속에 흔들리는 빈자(貧者)의 손,

앙상한 숲을 바라보며 울었다.

 

늦기 전에 가리라,

방파제 너머로 몰려와 부서지는 지겨운 시간들,

남은 것들이 하얗게 부서지는

밤바다

아, 묶인 배들은 묶인 채 울고

굵고 튼튼한 끈 위에 눈은 쌓였다.

우리는 알지도 못하면서

기우뚱거릴 뿐, 피를,

잘려나가는 육신을 견디고 있었다.

 

저 막막한 눈보라 속으로

껌정신을 끌고 갔다.

늦기 전에 가리라,

흰옷을 입은 남자들이 휠체어에 실려

분수가 쏟아지는 마을의 긴 골목을

밤새도록 밀려가고

이 세대의 폐항에

돌아온 배들이 굳게 굳게 묶인다.

묶인 채 기우뚱거리며

눈보라속에 있다.

 

* 이건청

* 한국명시(최동호편저) 하권 20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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