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위한 메모

등록일2020-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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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위한 메모

 

3. 바다의 언어

 

우리가 한 바다를 지날 때

한 무리의 구름이 되어

바다 위를 떠갈 때

 

아득히 먼 뱃머리가 갑판 위에서

서로 모를 사람들이

손을 흔든다

더 없이 뜨거운 혈육들처럼 손을 흔든다

 

흔드는 손을 알고 있다

우리가 어느날 바다를 떠나올 때

새벽의 여명이나 낙양의 노을을

 

뒤에 두고 올 때

기억과 미래도 남몰래 내려놓고 올 것을

내일 없는 바다에

우리가 모두

뿌리 없이 흘러가는 물결이며

시시로 부서져 가는 포말임을

서로 아는 것이다

 

잠시 스쳐가는 이 세상의 만남과

흘러가는 의미를

흔드는 두 손에 담아보는 것이다

흔드는 두 손에 확인하는 것이다

 

바다에선 누구도

그 밖의 말을 알지 못한다

손을 흔드는

손을 흔드는

그 유순한 순명

그 밖의 어떤 세상 말도

바다는 잠잠히 지워버린다

 

* ‘타관의 햇살’, 1974년

* 홍윤숙

* 한국명시(최동호 편저) 하권 107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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