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위한 메모
3. 바다의 언어
우리가 한 바다를 지날 때
한 무리의 구름이 되어
바다 위를 떠갈 때
아득히 먼 뱃머리가 갑판 위에서
서로 모를 사람들이
손을 흔든다
더 없이 뜨거운 혈육들처럼 손을 흔든다
흔드는 손을 알고 있다
우리가 어느날 바다를 떠나올 때
새벽의 여명이나 낙양의 노을을
뒤에 두고 올 때
기억과 미래도 남몰래 내려놓고 올 것을
내일 없는 바다에
우리가 모두
뿌리 없이 흘러가는 물결이며
시시로 부서져 가는 포말임을
서로 아는 것이다
잠시 스쳐가는 이 세상의 만남과
흘러가는 의미를
흔드는 두 손에 담아보는 것이다
흔드는 두 손에 확인하는 것이다
바다에선 누구도
그 밖의 말을 알지 못한다
손을 흔드는
손을 흔드는
그 유순한 순명
그 밖의 어떤 세상 말도
바다는 잠잠히 지워버린다
* ‘타관의 햇살’, 1974년
* 홍윤숙
* 한국명시(최동호 편저) 하권 107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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