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海)에게서 소년에게

등록일2020-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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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1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2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내게는 아무 것 두려움 없어,
육상(陸上)에서, 아무런 힘과 권(權)을 부리던 자라도,
내 앞에 와서는 꼼짝 못하고,
아무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3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가,
지금까지 있거든 통기(通寄)하고 나서 보아라.
진시황(秦始皇), 나파륜*, 너희들이냐.
누구 누구 누구냐 너희 역시 내게는 굽히도다.
나하고 겨룰 이 있건 오너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4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조그만 산모를 의지하거나,
좁쌀 같은 작은 섬, 손뼉만한 땅을 가지고,
고 속에 있어서 영악한 체를,
부리면서, 나 혼자 거룩하다 하는 자,
이리 좀 오너라, 나를 보아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5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의 짝 될 이는 하나 있도다.
크고 길고 넓게 뒤덮은 바 저 푸른 하늘.
저것은 우리와 틀림이 없어,
작은 시비, 작은 쌈, 온갖 모든 더러운 것 없도다.
조따위 세상에 조 사람처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6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저 세상 저 사람 모두 미우나,
그 중에서 똑 하나 사랑하는 일이 있으니,
담 크고 순진한 소년배(少年輩)들이,
재롱처럼 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오너라 소년배 입 맞춰 주마.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소년} 창간호, 1908.11)

 

 

작품해설

 

1908년 11월에 창간된 『소년』의 권두시로 발표된 최남선의 시 작품.

신시() 혹은 신체시() 등의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최남선의 운문 양식에 대한 집착은, 그가 지녔던 계몽 의식의 전달 방법에 대한 모색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그 변모 과정은 대개 (1)창가, (2)신시, (3)시조의 순을 따른다.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이 중 (2)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이 작품은 전 6연이며, 각 연은 모두 7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1연을 제외하고는 모두 의인화된 바다가 화자로 등장하여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될 소년들에게 부정적인 현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끌고 나가 줄 것을 기대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1연에서는 화자의 입을 통하여 파도치는 바다의 위력적인 모습을 묘사하고, 2~4연에서는 권력자, 진시황, 나폴레옹, 부자 등 인간 세계에서 힘있는 척하는 것들의 왜소함을 비웃고, 5연에서는 인간 세상의 시비와 싸움, 더러움 등이 없어 하늘만이 바다의 짝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6연에서는 담 크고 순정()한 소년들이 자기에게 와 안길 것을 바라면서 소년들을 부르고 있는 바다가 그려져 있다. 내용 면에서 드러나는 이 시의 특징은 한마디로 계몽성이라 할 수 있다.

계몽이 낡고 묵은 것을 타파하고 새로운 것에로 이끄는 것이라 볼 때, 이 시가 기존 질서에의 질타를 과녁으로 하고 있다거나 아직 기존의 세계에 물들지 않은 소년들에게 연대 의식을 나타낸다는 점등은 작가의 의지에 잘 부합한다고 보인다. 그러나 그 계몽이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실천 가능성으로 제시되지 않고 극단적인 현실부정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은 지적되어야 한다.

이 점은 시적 과장이라기보다는, 작품이 다소 비현실적인 관념적 사고 혹은 의식 과잉 위에 기초해 있다는 점을 말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내용적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이 시의 바다 지향성인데, 시인은 ‘바다’로써 새로움을 향한 젊은 전진의 통로 혹은 근대적 문물과 정서를 지향하는 계몽의 표징으로 삼으려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바다라는 자연물에 대한 전통적 이미지에 획기적 변화를 낳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형태적인 면에서 드러나는 이 시의 특징은 과도기적인 율격 실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시가의 변모 과정을 ‘전통적인 시가→개화가사→창가→신(체)시→근대적 자유시’로 볼 때, 신(체)시가 놓이는 위치에서 짐작되듯이, 이 시는 한 연만을 떼어놓고 보면 4‧4조나 7‧5조 등의 정형적인 율격을 버리고 자유율에 상당히 접근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러 연을 함께 놓고 보면, 이 시는 각 연들 사이에 서로 대응되는 행의 길이나 구조가 똑같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각 연은 7행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연의 2‧4‧6행은 3‧4‧5의 자수율이 지켜지며 3행과 5행은 대부분 4‧3‧4‧5 혹은 4‧3‧4‧7로 글자수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각 연의 1행과 7행이 전부 파도소리의 의성어로 되어 있다는 점도 이 시의 형태적 고정성을 심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런 점들을, 새로운 율격의 실험이라는 문학사적 의의로 인정할 수도 있겠지만, 끝내 실험으로 그쳐버리고 말았다는 점에서 과도기적 작가 의식의 한계를 보여주는 표징으로 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료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해에게서 소년에게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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